고대 인도네시아①…해상제국 스리비자야
고대 인도네시아①…해상제국 스리비자야
  • 김현민 기자
  • 승인 2023.12.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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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도, 페르시아 연결하는 무역거점…승려만 1천명, 불교 국가

 

2018년 아시안게임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공동개최되었다. 자카르타가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팔렘방은 어떤 도시일까.

팔렘방(Palembang)은 인구 108만명으로, 인도네시아에서는 9, 수마트라섬에서는 2위의 도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그 많은 도시 가운데 팔렘방을 아시안게임 공동개최 도시로 선택한 것은 자국의 역사가 깊고 한때 동남아시아 해상을 장악했음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팔렘방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이다.

15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하나의 문화권이었다. 근대기에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았고,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바람에 별개의 나라로 분리되었다.

팔렘방은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통치하던 스리비자야(Srivijaya) 왕국의 수도였다. 통치기간은 650년에서 1377.

왕조가 만들어진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신라 진덕여왕, 고구려 보장왕, 백제 의자왕의 시기로, 삼국시대 말기였다. 중국은 당 고종 재위기, 일본은 다이카(大化)개신을 할 때다. 스리비자야가 소멸한 시기는 중국에선 명()나라 홍무제, 한반도에선 고려 우왕 때였다. 따라서 스리비자야 왕국은 우리 역사에서 통일신라에서 고려 시대와 겹치는 700여년의 기간에 말레이 반도와 순다 열도를 지배한 거대한 해상제국이었다.

 

스리비자야의 지배영역과 활동영역 /위키피디아
스리비자야의 지배영역과 활동영역 /위키피디아

 

스리비자야 왕국은 9~11세기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수도 팔렘방은 동남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중국·인도 및 동남아시아 각지와 교역하는 거점항구였다. 우리나라의 탐라국(제주)과 교류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섬은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인도를 연결하는 동서 해상교역로로서 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었다. 팔렘방은 수마트라 섬 남동쪽 무시 강(Musi R.) 어귀에 위치하고 있다. 지명은 '하천이 모이는 곳' 또는 '하천의 충적지'라는 뜻으로, 고대부터 항구조건을 갖추었다. 스리비자야는 7세기부터 이 해상교역로를 장악하고, 말레이 반도와 자바 섬도 지배했다. 왕국은 팔렘방에 좋은 항만 시설을 제공하고 시장을 열어 교역선들을 유치했다.

팔렘방은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의 말래카 해협과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 사이의 순다 해협 등 동서 항해의 두 주요 항로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왕국의 강한 해군력으로 동서 간을 이동하는 모든 선박을 통제하며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스리비자야의 해군은 배 위에서 살며 해상유랑민으로 불리는 오랑라웃(Oran Lout)이 맡았다. 오랑라웃은 팔렘방 왕족의 수족이 되어 해적을 무찌르고 경쟁관계에 있는 항구를 제압했다.

 

스리비자야는 고대 동남아의 통치방식인 만달라의 중심이었다. 이 해상제국은 영토적 경계를 가진 나라는 아니었다. 자신의 지배 영역 안에 소왕국의 자치를 인정하고 그들과의 주종관계를 확고히 했다. 복종하지 않으면 오랑라웃을 파견해 제압했다.

팔렘방의 군주는 자신의 부를 과시했다. 9~10세기 아랍의 기록에 팔렘방의 왕은 매일 의식을 치르는데, 황금 덩어리를 바다에 던지며 보라, 나의 보화가 널려 있다고 외쳤다고 한다. 스리비자야 시대의 비문이 여러 개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충성하는 자에겐 보상을 약속하고, 배반하는 자에겐 보복을 가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스리비자야의 주요 산물은 장뇌였다. 장뇌는 수마트라 북서부에서 생산되었는데, 스리비자야는 이 상품을 독점했다. 또 순다열도에서 생산되는 향료는 고대에도 유명했다. 중국, 인도, 아랍의 상인들이 팔렘방에 와서 향료를 거래했다.

 

스리비자야의 종교 중심지였던 무아로 잠비 불교사원 /위키피디아
스리비자야의 종교 중심지였던 무아로 잠비 불교사원 /위키피디아

 

스리비자야는 불교왕국이었다. 중국 정사인 신당서’(新唐書)송사;(宋史)에서 스리비자야는 '삼불제‘(三佛齊) 또는 '실리불서’(室利佛逝) 등으로 표기되었으며, 중국에 조공사절단을 보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나라 시절엔 승려 의정(義淨, 635-713)이 인도에서 공부하러 오가면서 스리비자야에 몇 년간 머물렀던 기록을 자신의 여행기 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 남겼다. 그 내용을 보면 의정은 광저우(廣州)에서 페르시아 배를 타고 약 20일 걸려 수마트라에 도착했다. 팔렘방에서 그는 6개월간 머물며 장차 학업에 필요한 산스크리트어를 익힌 후 인도로 갔다. 의정의 관찰에 따르면, 성채로 둘러싸인 도시 스리비자야에는 약 1,000천 명의 불승들이 있었다. 불승들의 경전 내용이나 의식이 중국과 별 차이 없었다고 한다.

의정의 기록에 따르면, 팔렘방은 무역선들의 기착지였고 불교의 중심지였다. 의정은 도자기, 진주, 비단 등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며, 장뇌, 백단향, 향료 등이 몰루카스로부터, 면직물은 인도로부터 수입되면서 거래되고 있음을 기록했다.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는 이곳을 거쳐 간 신라승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팔렘방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 당나라 또는 신라 승려들이 인도로 순례를 떠나 전에 머물며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곳이었다.

 

팔렘방 앞바다에 벨리퉁(Belitung)이라는 섬이 있다. 1998년 바다 속에서 해삼을 캐던 잠수부가 도자기를 건져냈다. 2년후 본격적인 수중 발굴이 이뤄졌다. 난파된 선체와 무역품들이 바닷속 17m 지점에 고운 모래에 덮인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난파선은 벨리퉁 난파선, () 난파선, 흑석호(黑石號) 등으로 불리었다.

난파선은 1,200년전, 9세기의 아랍 무역선이었다. 난파선의 출발지는 중국 당()나라 국제무역항이었던 광저우(廣州)였고, 목적지는 페르시아만의 무역항으로 추정된다. 발굴된 도자기에 보력(寶曆) 2716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당나라 경종(敬宗) 2, 서기 826년으로 추정된다. 이 배에는 67,000여점의 각종 보물이 가득 차 있었다. 파손된 것을 포함하면 7만 점으로 추정된다. ·은 그릇과 은괴, 청동거울, 유리병, 칠기, 동전, 선상 생활품 등이다.

 

인도네시아 벨리퉁섬과 고대 해상무역로 /위키피디아
인도네시아 벨리퉁섬과 고대 해상무역로 /위키피디아

 

스리비자야 왕국은 1025년 인도 남부에 있던 촐라 왕조의 침략을 받아 쇠약해졌고, 수도 팔렘방도 수탈을 당했다. 이후 왕국은 수도를 팔렘방에서 내륙으로 이전하고 농업국가로 전환했다. 스리비자야는 해상무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급격하게 세력이 약화되어 소국으로 전락하며 명맥만 유지했다. 13세기 말 자바섬을 거점으로 마자파힛(Majapahit) 왕조가 일어나면서 더욱 위축되었다. 이때부터 열도의 중심지는 수마트라에서 자바섬으로 바뀌었다. 15세기 초에는 진조의(陳祖義)가 이끄는 중국 해적단에게 점령당하기도 했다.

 

14세기말 팔렘방의 군주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는 자바섬의 마자파힛(Majapahit) 왕국의 공격을 받고 말레이반도 남단에 있는 테마섹(지금의 싱가포르)으로 건너가 그곳 지배자를 몰아내고 나라를 세웠다. 이웃 샴(Siam, 태국) 왕국이 종주권을 내세워 싱가푸르를 공격해자, 파라메스와라는 말레이반도 서해안을 따라 북상해 나라를 세웠다. 그들은 그곳을 믈라카(Melaka)라고 했는데, 믈라카는 수마트라의 한 지역 명칭이며, 말레이 반도에서 자라는 나무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때가 서기 1400년경이다. 스리비자야의 후손이 건설한 나라가 말라카 술탄국이다. 말라카는 포르투갈이 아시아로 오기 전에 아시아의 무역거점이었다.

스리비자야는 동남아시아 도서지역을 포괄적으로 지배했기 때문에 오늘날 말레이어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의 공동국어가 되었다.

 


<참고자료>

Wikipedia, Srivijaya 

Wikipedia, Yijing (monk) 

Wikipedia, Belitung shipwr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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