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대법원①…헌법 최종해석자
美 연방대법원①…헌법 최종해석자
  • 김위영 고전연구가
  • 승인 2024.02.0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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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이후 대법원 보수화, 트럼프에서 절정…통합보다 분열 야기하는 요인

 

김위영 고전연구가, B2B 산업번역 크리덴셜(https://credloc.com/ko/) 대표이사

 

미국 연방대법원은 헌법의 최종 해석자로서 모든 분쟁의 최종 해결사 역할을 한다. 대법원 판결이 나면 그것으로 완전히 종결된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대해 3회로 연재한다.

 

2022624일에 여성이 임신 15주 이후에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국 미시시피 주() 법에 대한 위헌 심판인 ‘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돕스 대 잭슨 여성 건강 기구)사건에서 찬성 6, 반대 3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임신 후 28주까지 보편적 낙태권을 보장한 1973년의 ‘Roe v. Wade(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전면 뒤집은 것이다. 그동안 헌법으로 보장됐던 낙태권의 존폐에 대한 결정이 이제는 주() 정부 와 주 의회의 권한으로 넘어간 것이다. 실제로 미국 50개 주(state) 중에 26개 주가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 연방대법원은 2022623일에 집 밖에서 총을 휴대하지 못하게 하는 1913년에 제정된 뉴욕주의 총기 휴대 제한법을 ‘NYSRPA v. Bruen(뉴욕주 총기협회 대 브루엔)’ 판결을 통해 위헌으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빈번한 총기사고로 총기 휴대를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 추세와 상반된 판결을 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태어나지도 않는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면서 세계인들이 모이는 관광지 뉴욕에서 일반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총기의 휴대를 허용하는 정치적으로 보수화된 판결을 내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연방대법원이 두 차례의 판결을 통해 미국을 <연합(United States)이 아니라 분열(Disunited States)>로 나아가게 하고 있어 미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연방대법원이 이처럼 보수화된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전략상 실패와 공화당인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새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6213일 사망한 보수주의자 Antonin Scalia(앤터니 스캘리아, 1936~2016) 연방대법관의 후임으로 진보성향의 Merrick Garland(메릭 갈랜드) 워싱턴 연방고등법원장을 지명했으나 대통령 임기가 20171월이면 끝난다며 상원에서 다수파를 장악한 공화당의 반대로 인준이 부결되었다. 그 후임은 당연히 2017120일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Neil Gorsuch(닐 고서치, 1967~ ) 판사를 2017131일 대법관으로 임명했다. 거기에다가 진보진영의 아이콘이자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던 Ruth Ginsburg(루스 긴즈버그, 1933~2020)가 고령이라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에 사임을 하고 진보주의자로 후임을 임명해야 한다는 제안을 거부하고 끝까지 종신직을 지키겠다고 하였으나 2020918일에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만료 4개월 전에 사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를 10개월 남기고 스칼리아가 사망했을 때 곧 퇴임할 대통령이 수십 년을 계속할 대법관을 임명할 수 없다며 반대한 과거를 까맣게 잊고 선거가 2개월도 안 남은 상황에서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은 긴스버그가 사망한 지 8일 만인 2020927Amy Coney Barrett(에이미 코니 배럿, 1972~ )을 후임 대법관으로 지명했고 상원은 신속히 인준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민주진영을 이긴 것이다.

공화당의 대법원 보수화 전략은 닉슨 대통령 때부터 시작되어 레이건과 부시를 거쳐 트럼프에서 절정을 이루어 대법관 9명이 보수 대 진보의 6:3 구조로 대법원을 개편한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분열은 항상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반영해서 정치적 이유로 판결을 한 결과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결정에 직면했을 때에는 대법관들이 그들을 임명한 대통령의 목표와 이상으로부터 기꺼이 이탈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하는 Moderate(중도파)로 활약하는 대법관들이 많아 연방대법원이 스스로 권위를 지켜올 수 있었다. 이러한 전통이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 3명의 임명으로 무너지며 연방대법원이 시대의 조류를 역행하는 보수 사회로 회귀하는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기초를 다진 최고의 대법관으로는 제4대 대법관 John Marshall(존 마샬, 1755~ 1835)을 꼽는다. 연방주의자로 제2대 대통령 John Adams(존 아담스, 1735~1826)는 임기 종료 하루 전인 180132일에 워싱턴 D.C. 구역의 연방법원 판사 42명을 모두 연방파 사람들로 임명했다. 임기 종료일인 33일 대통령이 임명장을 서명하였으나, 밤새 모든 임명장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다음날 대통령에 취임한 반연방주의자 제3Thomas Jefferson(토머스 제퍼슨, 1743~1826) 대통령은 신임 국무장관 Madison(메디슨)에게 임명장을 교부받지 못한 판사들은 취임식을 기준으로 모두 무효화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임명장을 받지 못한 사람 중 Marbury(마버리) 3인은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독립 건물도 없이 연방 의회 건물의 한 편에서 재판하던 연방대법원이, 헌법에 위배되는 의회의 법률은 법원에 의해 위헌무효로 판결될 수 있다고 세계 최초로 사법 심사제(Judicial review)를 도입했다. 미국 연방대법원 건물에 새겨진 1803‘Marbury v. Madison(마버리 대 메디슨 사건)' 판결문의 일부다.

“IT IS EMPHATICALLY THE PROVINCE AND DUTY OF THE JUDICIAL DEPARTMENT TO SAY WHAT THE LAW IS(법이 무엇인지 선언하는 것은, 명백히 사법부의 영역이자 책무이다).”

 

 

The Brethren(형제들, 1979)

Inside the Supreme Court(연방 대법원의 내부)

 

미국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보도하여 퓰리처상을 받은 Bob Woodward(밥 우드워드, 1943~ )가 후배 기자와 함께 1969년부터 1976년 동안의 워런 버거의 연방대법원 내부에 관해 저술한 책이다. 버거 대법원장이 취임한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이뤄진 판결 가운데 낙태 권리, 사형제도, 음란물 규제, 워터게이트 사건 등과 같은 결정들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추적하고 있다.

 

The United States Supreme Court, the highest court in the land, is the final forum for appeal in the American judiciary. The Court has interpreted the Constitution and has decided the country’s preeminent legal disputes for nearly two centuries. Virtually every issue of significance in American society eventually arrives at the Supreme Court. Its decisions ultimately affect the rights and freedom of every citizens. --P.xv

미합중국 연방대법원은 미국에서 최고 법원이며 미국 사법부에서 최종 상고심이다. 연방대법원은 헌법을 해석했고 거의 2세기에 거처 나라의 뛰어난 법적 사건들을 결정해 왔다. 미국 사회에서 사실상 중대한 모든 분쟁은 종국에는 연방대법원에 도달한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영향을 미친다.

 

They knew the “Warren Era” was about to end. As Chief Justice for fifteen years, Warren had led a judicial revolution that reshaped many social and political relationships in America. The Warren Court had often plunged the country into bitter controversy as it decreed an end to publicly supported racial discrimination, banned prayer in the public schools, and extended constitutional guarantees to black poor people, communists, and those who were questioned, arrested or charged by the police. --P.3

그들은 워런 시대가 막 끝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5년간 대법원장으로서 워런은 미국의 많은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바꾸어 놓은 사법 혁명을 주도해 왔다. 워런 법원은 공공연한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인종차별을 끝마치는 명령을 내렸고, 공립학교에서의 기도를 금지하고 흑인, 가난한 사람, 공산주의자, 그리고 경찰이 심문하거나 체포, 입건하는 사람들에게도 헌법적 보장을 확장하여 국가를 격렬한 논쟁에 몰아넣었다.

 

Technically, the Chief was only first among equals, but the post of Chief Justice had definite prestige. On the other hand, the Chief’s vote counted no more than that of any of the other eight Justice. The Chief also the additional chores of administering the Court and managing the building. --P.11

엄밀히 말하면, 대법원장은 동료들 중의 수장(首長)에 지나지 않지만 대법원장이라는 직위는 확고한 명성을 가진다. 반면에 대법원장의 투표권은 다른 여덟 대법관들의 누구와도 같다. 대법원장은 행정과 청사를 관리하는 부가적인 잡일도 했다.

 

The Court, Warren said, serve only “the public interest,” is guided solely by the Constitution and the “conscience” of the individual Justices. He was stepping down, Warren said, with a feeling of “deep friendship” for the other Justice “in spite of the fact that we have disagreed on many things.” --P.25

워런은 말했다. “대법원은 오직 공익에만 봉사하며, 오직 헌법과 개별 법관의 양심에 따라 인도될 뿐입니다. 나는 많은 사안에서 의견이 다름에도 불구하고다른 동료 대법관들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며 자리에서 물러갑니다.”

 

The next day, Friday, October 24, the Justices met in conference to discuss the case. Tradition dictated that the Chief speak first, that he outline the issues and briefly state his view. Then the discussion would proceed in order of seniority, stating with Black. Theoretically, voting would then take place in the opposite order, starting with the junior Justice, Thurgood Marshall. --P. 46

다음날인 1024일 금요일, 대법관들은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집합했다. 전통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맨 먼저 인사말을 하고 쟁점의 개요를 설명하며 자신의 견해를 간단히 진술한다. 그런 다음 토론은 고참 순으로 진행한다, 블랙이 먼저다. 원칙적으로 표결은 역순으로 진행하며 신참 대법관 더굿 마샬에서 시작된다.

 

Blackmun was dumbfounded. All over the country there were people who couldn’t get into on civil cases because they couldn’t pay the fees. A majority of Supreme Court had resolved the problem. But a single Justice had the power to force them all to wait. And now he was a Justice and had that same power. --P. 107

대법관 블랙먼은 말문이 막혔다. 비용을 대지 못하기에 민사재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 도처에 있었다. 과반수 대법관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대법관도 모든 결정을 연기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이제 자신도 대법관이며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These death sentence,” he wrote, “are cruel and unusual.” The system of rule by law had broken down. The death penalty was random justice, and random justice was injustice. Stewart was able to say all he needed to say in ten paragraphs. --P. 261

대법관 스튜어트는 이와 같은 사형제도는 잔인하고 이례적이다라고 판결했다. 법에 의한 통치체제가 무너졌다. 사형제도는 자의적인 정의이며, 자의적인 정의는 부정의이다. 스튜어트는 열 문장이면 모든 핵심을 말할 수가 있었다.

 

By the end of the term, Stevens was accustomed to watching his colleagues make pragmatic rather than principled decisionsshading the facts, twisting the law, warping logic to reconcile the unreconcilable. Thought it was not at all what he had anticipated, it was the reality. --P. 538

개정기가 끝날 무렵 대법관 스티븐스는 동료들이 원칙적 결정보다 실용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데 익숙해졌다.--사실을 숨기고, 법을 오도하며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조정하기 위해 논리를 왜곡했다. 그가 기대했던 것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The Supreme Court(연방대법원, 2002)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워런 버거 후임으로 1986년에 제16대 연방대법원장으로 지명되어 2005년까지 직무를 수행한 William Rehnquist(윌리엄 렌퀴스트, 1924~2005)2002년에 출간한 저서이다. 본서에서 연방대법원의 초기부터 역사와 큰 족적을 남긴 주요한 대법원 판사와 중요한 연방대법원 판례를 소개하고 있다.

 

The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decided the case of Marbury v.Madison when John Marshall had been Chief Justice only two years. He continued to serve for another thirty-two years, until his death in July, 1835. During this period, cases brought to the Supreme Court established important ground rules as to just how much authority the Constitution conferred upon the newly created national government, and how much it curbed the previously completely sovereign authority of the states at the time they entered the Union. --P. 36

미국 연방대법원은 마버리 대 매디슨 사건을 존 마셜이 대법원장이 된 2년 만에 결정했다. 그는 18357월 사망할 때까지 32년간 더 재직했다. 이 시기에 대법원에 제소된 사건들은 헌법이 새로 창설된 연방정부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했는지와 각 주(state)들이 연방에 가입했을 때 이전에 완전히 주권을 행사했던 주들의 권한을 얼마나 억제할지에 대한 중요한 근거를 수립했다.

 

Brandeis and Holmes were to sit together on the Supreme Court for sixteen years, until the latter’s retirement in 1932. They were in agreement that the Constitution did not forbid the sort of economic regulation that was one of the fruits of the Progressive movements, and they agreed that the First Amendment to the Constitution protected freedom of speech and freedom of press in a way that the majority of the Court was not willing to recognize during their tenure. --P.112

대법관 브랜다이스와 홈즈는 1932년 홈즈가 은퇴할 때까지 16년 동안 대법원에서 함께 일했다. 그들은 헌법이 진보 운동의 결실 중 하나인 일종의 경제 규제를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들은 헌법 수정 제1조가 그들의 재임 기간 동안에 대법원의 다수가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데 동의했다.

 

After short debate in the Senate, a motion to cut off debate failed by a large margin. Fortas asked Johnson to withdraw his name, and the President did so. Earl Warren would serve another year as Chief Justice, but Johnson did not get to appoint his successor. Warren F. Burger, the new Chief Justice, was appointed by the new President, Richard Nixon. --P. 208

상원에서 짧은 토론 끝에 토론을 중단하자는 발의는 큰 표차로 실패했다. 대법관 포터스는 존슨 대통령에게 그의 지명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고,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얼 워런은 대법원장으로 1년 더 재직하게 되었지만 존슨은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하지 못했다. 신임 대법원장인 워런 F. 버거는 새로 선출된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었다.

 

The only publicly visible part of the Supreme Court decision process is the oral argument. It is the time allotted to lawyers for both sides to argue their position to the judges who will decide their case. In our Court, it takes place in the courtroom of the Supreme Court building fourteen weeks out of each year; two weeks each in the months of October through April. --P. 241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구두변론뿐이다. 구두변론은 자신의 사건을 결정할 대법관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는 양측 변호사에게 할당된 시간이다. 연방법원에서는 매년 10월부터 4월까지 각 2주씩 14주 동안 대법원 건물의 법정에서 진행된다..

 

The Supreme Court has on occasion been referred to as the conscience of the country, but I think this description has a considerable potential for mischief. If no more is meant by it than that the Court insofar as it uphold the principle of the Constitution is the conscience of the country, it is of course quite accurate. --P. 278

대법원은 간혹 국가의 양심이라고까지 언급되지만, 이러한 표현은 해악에 대한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원이 헌법의 원칙을 수호하는 한 국가의 양심이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물론 아주 정확하다.

 

 

The Nine(9명의 연방대법원 판사, 2007)

 

The New Yorker 소속 작가이자 CNN의 법조 담당 고위 해설자인 변호사 Jeffrey Toobin(제프리 토빈, 1960~ )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은밀한 세계에 대해 전문기자의 시각으로 연방대법원장 버거~ 렌퀴스트 시기를 취재해 밝히고 있다.

 

Visitors would not have to walk a long distance to enter, but few would forget the experience of mounting those forty-four steps to the double row of eight massive columns supporting the roof. The walk up the stairs would be the central symbolic experience of the Supreme Court, a physical manifestation of the American march to justice. --P.1

방문자들은 연방대법원 청사에 들어가기 위하여 오래 걸을 필요는 없었지만, 44개의 층계를 올라 지붕을 떠받치는 두 줄의 8개 장엄한 기둥을 만난 경험을 잊지는 못했을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걷기는 연방대법원을 상징하는 가장 핵심적인 경험이 될 것인데, 정의를 향한 미국인의 행진에 대한 형이하학적 표현이다.

 

Few associate justice in history dominated a time so thoroughly or cast as many deciding votes as O’Connoron important issues ranging form abortion to affirmative action, from executive war powers to the election of a president. --P.7

역사상 오크너만큼 완전하게 한 시대를 지배한 대법관도, 오크너만큼 많은 결정적인 한 표를 행사한 대법관도 없었다. 낙태에서 흑인에 대한 적극적인 평등 실현까지, 행정부의 전쟁 권력부터 대통령의 선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오코너는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행사했다.

 

The truth about Supreme Court law clerks seems more mundane. Generally in their late twenties, they are top graduates of leading law schools who have first spent a year working as clerks for lower court judges. (The judges who regularly place their clerks on the high court are known as “feeders.) The clerks review cert petitions, helping to window the eight thousand or so cases to the eighty or so accepted for review. They discuss the cases with their justices to prepare for oral argument, and, most notably, they write first drafts of opinions. --P.156

대법원 재판연구원들에 관한 진실은 보다 흔한 일처럼 보인다. 연구원들은 일반적으로 20대 후반으로 일류 로스쿨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먼저 하급법원의 연구원으로 1년간 일했다.(자신의 연구원들이 규칙적으로 상급법원의 연구원이 되는 판사들은 사육사라고 부른다.) 연구원들은 청원을 심사하여 8천여 건에 달하는 사건을 심사대상이 될 80건 내외로 선별하는 것을 도왔다. 그들은 구두변론을 준비하기 위해 대법관들과 사건에 관하여 논의를 했고, 가장 도드라진 것은 연구원들이 의견 초안까지 작성했다는 점이다.

 

In 1974, the justices had risen to the occasion when, in United States v.Nixon, they unanimously ordered the president to turn over the White House tapes and, in a larger sense, comply with the rule of law. Here, in a moment of probably even greater significance, the Court as an institution and the justices as individuals failed. --P.176

1974, 대법관들은 미합중국 대 닉슨 사건에서 대통령에게 백악관 녹음테이프를 제출하고, 더 큰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도 법의 지배에 따르도록 만장일치로 명령하여 난국을 헤쳐나갔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를 지금 상황에서, 기관으로서의 대법원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대법관들은 실패했다.

 

For many years, the Court had a traditional of holding a welcoming dinner for each new member, with the former junior justice acting as host. The practice fell into disuse in recent years because there had been so little turnover among the justices. Still, during the summer of 2006, Breyer said he wanted to revive the custom and have a dinner for Alito. --P.323

여러 해 동안 대법원은 각 신입 대법관을 위한 환영 만차는 여는 전통이 있었고 직전 대법관이 주체자 역할을 했다. 이런 관행이 최근 몇 년간 대법관들 사이에 교체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폐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2006년 여름에 브레이어는 전통을 되살려 신임 대법관 알리토를 위해 환영회를 개최하고 싶다고 말했다.

 

Today, the fundamental divisions in American society are not regional or religious but ideological. Roberts, Scalia, Kennedy, Thomas, and Alito were not appointed because they are catholic but because they are conservative. --P. 338

오늘날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분열은 지역적이나 종교적이지 않고 이념적이다. 대법관인 로버츠, 스칼리아, 케네디, 토마스 그리고 알리토가 임명받은 것은 그들이 가톨릭 신자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이었다.

 

Cass Gilbert’s steps represent at some level a magnificent illusionthat the Supreme Court operates at a higher plane than the mortals who toil on the ground. But the Court is a product of a democracy and represents, with sometimes chilling precision, the best and worse of the people. We can expect nothing more, and nothing less, than the Court we deserve. --P.340

미국 건축가 캐스 길버트(1859~1934)가 설계한 층계는 어느 정도 장대한 환상을 표현한다. , 대법원은 지상에서 고생하는 사람들보다 고상한 곳에서 일한다는 환상 말이다. 그러나 법원은 민주주의의 산물이며, 때때로 무서울 정도로 정확성으로, 국민들의 최악과 최선을 대표한다. 우리는 기대하는 대법원은 우리가 받아야 할 법원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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