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미국사①…짧은 시기에 우뚝 선 제국
신박한 미국사①…짧은 시기에 우뚝 선 제국
  • 김위영 고전연구가
  • 승인 2024.02.27 08:2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서의 향기]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 다양한 경험과 사건으로 점철

 

김위영 고전연구가, B2B 산업번역 크리덴셜(https://credloc.com/ko) 대표이사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한 미국은 지난 250여 간에 역사서가 가장 많이 발간된 나라이다, 미국 남북 내전(Civil War)과 독립 전쟁 및 식민시대에 대한 주옥같은 저서가 많다. 시대별 각론은 엄청 많은 반면에 전체 역사를 아우르는 개론서가 오랫동안 부족했다. 그나마 1950년에 미국 공보원(United States Information Agency, USIA)에서 발간한 An outline of American history(미국사 개론)가 알려졌는데 Francis Whitney(프란시스 휘트니, 1878~1963)가 저술하고 컬럼비아대학 역사학과의 저명한 Richard Hofstadter(리처드 호프스태터, 1916~1970)가 감수를 보았다. 지금도 주한 미국 공보원(USIS)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으며 오랫동안 사랑받은 개론서였다. 이러던 차에 가장 표준적인 교과서와 같은 개론서가 1994년도에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였던 Alan Brinkley(앨런 브링크린, 1949~2019)에 의해 출간된다, 바로 The Unfinished Nations(끝나지 않는 나라)이다. 1996년에는 미국 진보주의의 대명사인 Howard Zinn(하워드 진, 1922~ 2010)의 눈물없이 읽을 수 없다는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미국 민중사, 1996)가 출판되고 100만부 이상 팔리는 인기를 얻었다. 이어서 영국의 보수주의의 아이콘인 저명한 역사가 Paul Johnson(폴 존슨, 1927~2023)1999년에 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미국인의 역사)를 출간했다.

이외에 Civil War(남북내전) 전문가인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이자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James M. McPherson(제임스 맥퍼슨, 1936~)의 책임하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미국사 시리즈 11>이 시대별 각론으로 출판되어 명성을 얻었다. 진보주의자로 저명한 역사가이자 미국 역사학회(AHA)회장을 역임한 컬럼비아대학교 Eric Foner(에릭 포너, 1943~ )의 책임 하에 간행 중인 <펭귄 미국사 시리즈 5>도 있으며 주로 진보적 사관을 대변하고 있다. 역사를 보는 사관이 보수주의, 진보주의, 중도(절충)주의,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는 사학자도 있으며, 이처럼 다양한 미국사의 개론서 16권을 5회에 걸쳐 소개하려 한다. 이와 별도로 식민지 시대, 독립전쟁, 남북전쟁, 노예제도 등 시대적 각론을 정리할 예정이다.

무슨 이유로 미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역사로부터 배운 교훈이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나아갈 방향 설정과 현명한 의사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계사에서 미국처럼 짧은 시기 동안에 다양한 경험과 사건으로 점철된 나라도 없으며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선 나라도 없다. 궁극적으로 미국사의 이해는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미국 역사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776년을 시작으로 보거나, 베링해가 육지였던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온 몽골 아시아계의 원주민을 역사에 포함시키는 견해, 1607년 영국인이 이주를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미국사의 시대 구분도 원주민 시대, 식민지 시대, 독립 전쟁, 남북전쟁, 재건기, 길드 시대, 진보시대, 1, 2차 세계대전, 냉전 시대, 현대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이탈리아 출신 Christopher Columbus(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451~1506)가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14921012일에 신대륙인 산살바도르섬을 발견했다. 스페인은 그 이후 남미를 정복하여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으로 약 200년간 유럽 최강국으로 번영을 누렸고 ‘Age of Discovery(대항해의 시대)’를 열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일어난 생물과 인구의 급격한 이동을 ‘Columbian Exchange(콜럼버스의 교환)’이라고 부른다.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여온 작물은 칠면조, 호박, 파인애플, 카카오, , 바닐라, 옥수수, 토마토, 감자, 땅콩, 카사바, 피망, 고구마 등이 있고,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들어간 것은 양파, 올리브, 커피, 복숭아, , 꿀벌, 바나나, 사탕수수, 포도, , 돼지, , 곡물 등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Jared Diamond(재러드 다이아몬드, 1937~)1997<Guns, Germs, and Steel(, , )>에서 구대륙의 인간은 신대륙에 도착한 순간에 홍역 등 각종 질병을 옮겨 수많은 원주민을 죽였다고 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발을 딛자 천연두(홍역, 수두), 콜레라, 페스트,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의 질병이 마치 지옥문이 열리듯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유럽인들의 이동보다 더 빠르게 멀리까지 퍼졌던 것이다. 콜럼버스를 비롯해 코르테스, 피사로 등이 잇달아 진출해 원주민을 상대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다. 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에는 축복이었으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유럽인과 접촉으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극심한 인구 감소가 시작했다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1,000만 명으로 추산됐던 원주민 인구는 1800년경 50만 명 정도로 줄어들면서 90% 이상의 인구 감소를 겪었다.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1996)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하워드 진의 생애는 드라마틱하다. 가난한 조선소 노동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육군 항공대 폭격수로 활동하였다. 그 후 모든 현대 전쟁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는 결론을 내렸다. 전역해서 27세에 역사 공부를 시작해 대학교수가 된 뒤 흑인 인권과 베트남전 반전운동의 상징이 됐다. 백인 지식인으로 차별받는 흑인의 인권을 위해 투옥과 해고를 감수했다. 이로 인해 하워드 진은 행동하는 지식인의 대명사가 됐다.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다는 본서는 미국의 부끄럽고 수치스런 어두운 단면을 속속들이 파헤쳐 미국의 민낯을 보여 준다. 1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They do not bear arms, and do not know them, for I showed them a sword, they took it by the edge and cut themselves out of ignorance. They have no iron. Their spears are made of cane. . . .They would make fine servants. . . .With fifty men we could subjugate them all and make them do whatever we want. --P.1

그들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무기를 모른다. 내가 칼 한 자루 보여주자 아무 것도 모른채 칼날을 쥐다가 손을 베이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철이 없다. 이들의 창은 막대기에 불과하다이들은 좋은 하인이 될 듯하다50명만 있으면 이들 모두 정복해서 마음껏 부릴 수 있을 것이다.

 

The Indians, Columbus reported, “are so naive and so free with their possessions that no one who has not witnessed them would believe it. When you ask something they have, they never say no. To the contrary, they offer to share with anyone.” --P.3

콜럼버스는 보고했다. 인디언은 순수하고 소유욕이 없어서 목격하지 않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가진 것이 무엇이든 청하기만 하면, 결코 거절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가진 것을 누구에게나 나누어 주려 한다.“

 

Thus, in that inevitable taking of sides which comes from selection and emphasis in history, I prefer to try tell the story of the discovery of America from the pointview of the Arawaks, of the constitution from the standpoint of the slaves, of Andrew Jackson as seen by the Cherokees, of the Civil War as seen by the New York Irish, of the Mexican war as seen by the deserting of Scott’s army, of the rise of industrialism as seen by the young woman in the Lowell textile mills, of the Spanish-American war as seen by the Cubans, the conquest of the Philippines as seen by black soldiers on Luzon, the Gilded Age as seen by southern farmers, the First World War as seen by socialist, the Second World War as seen by pacifists, the New Deal as seen by blacks in Harlem, the postwar American empire as seen by peons in Latin America. --P.10

역사에서 선택과 강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을 편들게 된다면, 나는 아라와크족의 관점으로 본 미국, 노예의 관점에서 본 미국 헌법, 체로키 인디언의 눈에 비친 앤드류 잭슨, 뉴욕의 아일랜드인들이 바라본 남북전쟁, 로웰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눈에 비친 산업주의 발흥, 쿠바인의 시각에서 본 미국-스페인 전쟁, 루손 섬 흑인 병사들이 눈에 비친 필리핀 정복, 남부 농민들이 본 길드 시대, 사회주의자들 눈에 비친 제1차 세계대전, 평화주의자들이 본 제2차 세계대전, 할렘 흑인들의 눈에 비친 뉴딜, 라틴아메리카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이 느낀 전후 미제국의 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The cry of the poor is is not always just, but if you don't listen to it, you will never know what justice is. --P10

가난한 자들의 절규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결코 정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Nations are not communities and never have been. The history of any country, presented as the history of a family, conceals fierce conflicts of interest(sometimes exploding, most often repressed) between conquerors and conquered, masters and slaves, capitalists and workers, dominators and dominated in race and sex. --P.10

국가는 공동체가 아니며 그런 적도 없었다. 어떤 나라의 역사가 한 가족의 역사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정복자와 피정복자, 주인과 노예, 자본가와 노동자, 인종 및 성별 상의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격렬한 갈등을(때로는 폭발적으로, 가장 자주 억압적으로) 감추고 있다.

 

What Columbus did to the Arawks of the Bahamas, Cortés did to the Aztecs of Mexico, Pizarro to the Incas of Peru, and the English settlers of Virginia and Massachusetts to the Powhatans and the Pequos. --P.11

콜럼버스가 바하마 군도에서 아라와크족에게 한 일을, 코르테스는 멕시코의 아스텍족에게, 피사로는 페루의 잉카족에게, 버지니아와 메사츄세츠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포우하탄족과 피쿼트족에게 자행했다.

 

The Indian population of 10 millions that lived north of Mexico when Columbus came would ultimately be reduced to less than a million. -P 16

콜럼버스가 왔을 때 북부 멕시코에 살았던 1000만 명의 인디언은 결국에 100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African slavery lacked two elements that made American slavery the most cruel form of slavery in the history: the frenzy for limitless profit that comes form capitalistic agriculture; the reduction of the slave to less than human status by the use of racial hatred, with that relentless clarity based on color, where white was master, black was slave. --P. 28

아프리카 노예제는 미국의 노예제를 역사상 가장 잔인한 형태의 노예제로 만든 두 가지 요소가 없었다. 첫째는 자본주의적 농업에서 기인하는 끝없는 이윤을 향한 광란이다. 둘째는 피부색에 따라 백인은 주인, 흑인은 노예라고 가차없이 구분하고 인종적 증오심을 이용함으로써 노예를 인간 이하의 지위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It was distributed in such a way as to give a double opportunity to the Revolutionary leaders: to enrich themselves and their friends, and parcel out some land to small farmers to create a broad base of support for the new government. Indeed, this become characteristic of the new nation: finding itself possessed of enormous wealth, it could create the richest ruling class in history, and still have enough for the middle classes to act as a buffer between the rich and the dispossessed. --P. 84

도망간 영국파에게 몰수한 토지는 혁명의 지도자들에게 이중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분배됐다. 지도자들과 그 친구들은 부자가 됐고, 새 정부에 대한 폭넓은 지지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소농민에게도 약간의 토지가 분배됐다. 실제로 이것이 새로운 국가의 특징이 됐다. 광대한 부를 소유하게 된 이 나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유한 지배계급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며, 부자와 무산자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중산층을 충분히 창출할 수 있었다.

 

Some cherokees had apparently given up on nonviolence; three chiefs who signed the Removal Treaty were found dead. But the seventeen thousand Cherokees were soon rounded up and crowded into stockades. On October 1, 1838, the first detachment set out in what was to be known as the Trail of Tears. --P 147

일부 체로키는 분명히 비폭력을 포기했다. 이주법에 서명한 3명의 추장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그러나 17천 명의 체로키가 곧 무리지어 성채로 몰려들었다. 1838101일에 최초의 선발대가 눈물의 길로 알려진 곳으로 출발했다.

 

The Indian was being driven off the western plains for good; on a cold winter day in 1890, U.S. army soldiers attacked Indians camped at Wounded Knee, South Dakota, and killed three hunderd men, women, and children. It was the climax to four hundred years of violence that began with Columbus, establishing that this continent belonged to white men. --P. 295

인디언들은 서부의 평원에서 영원히 쫓겨났다. 1890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 미 육군 병사들이 사우스다코타 주의 운디드니에 있는 인디언 막사를 습격해 300명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를 살해했다. 이 학살은 콜럼버스와 함께 시작된 400년간의 폭력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이 대륙은 백인들의 소유임을 확립했다.

 

President Bush immediately declared a “war on terrorism” and proclaimed “ We shall make no distinction between terrorists and countries that harbor terrorists.” --P. 678

20019·11 사태가 벌어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즉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숨겨주는 나라들을 구별하지 않을 것이다.”

 

 

A History of the American People(미국인의 역사, 1999)

 

영국의 저명한 보수주의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Paul Johnson(폴 존슨, 1927 ~ 2023)은 다양한 분야의 작가였다. 16세기 말 영국령 식민지부터 20세기 말 현재까지 400년 미국인의 역사를 신선하고 매력적인 통찰로 재해석해 낸다. <유대인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 <예수 평전>, <근대의 탄생>, <모던 타임스>등이 대표작이다.

 

The creation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the greatness of all human adventures. No other national story holds such tremendous lessons, for the American people themselves and for the rest of mankind. It now spans four centuries and, as we enter the new millennium, we needs to retell it, for if we can learn these lesson and build up them, the whole humanity will benefits in the new age which is now opening. --P.3

미합중국의 창조는 인류 최대의 모험이다. 어떤 다른 나라의 역사도 미국인 자신들과 인류 모두에게 이처럼 커다란 교훈을 주지 못한다. 4세기에 걸친 이 나라의 역사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로 들어가는 지금 다시 말하고자 한다. 이 교훈에서 배우고 미래를 건설할 수만 있다면, 이제 막을 열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에 인류 전체가 혜택을 볼 것이다

 

The Revolution could not have taken place this religious background. The essential difference between the American Revolution and the French Revolution is that the American Revolution, its origins, was a religious event, whereas the French Revolution as an anti-religious event. That fact was to shape the American Revolution from start to finish and determine the nature of the independent state it brought being. --P. 117

미국혁명은 이런 종교적 배경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본질적인 차이는 미국혁명이 그 기원에서 종교적 사건이었던 데 비해 프랑스혁명은 반종교적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그 사실이 미국혁명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형성하고, 그에 따라 생겨난 독립국가의 성격을 결정했다.

 

Like most ‘wars of liberation’ the American War of Independence was a bitter civil war too. One contemporary guess divided the people into three: the patriots, one-third, the Tory loyalists, one-third, and the remainder prepared to go along with either party. It is likely, however, that those who declined to take an active part were fully half the nation. --P.171

대부분의 해방전쟁과 마찬가지로, 미국 독립전쟁도 역시 참혹한 내전이었다. 오늘날 연구에 따르면 그 당시 미국인은 셋으로 나뉘었다. 애국주의자가 3분의 1, 국왕 지지자가 3분의 1, 나머지는 관망주의자로서 어느 한쪽에 가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 적극 관여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국민의 절반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The Civil War was not only the most characteristic event in American history, it was also the most characteristic religious event because both sides were filled with moral righteousness for their own cause and moral detestation of the attitudes of their opponents. --P. 435

남북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특징적인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특징적인 종교적 사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양쪽 모두 그들의 대의명분을 위한 도덕적 정의와 상대편의 태도에 대한 도덕적 혐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America had always been, from the earliest time, a democratic society, in that men(and indeed women) paid little attention to formal rank, even where it existed. Every man felt he had the right to shake hands with every other man, even the president(Washington was the first and last President to deny that right, by bowing). --P.846

미국은 초창기부터 항상 민주적 사회였는데, 남자들(그리고 실제로 여자들도)은 공식적인 지위가 설령 존재하더라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누구나 어떤 상대방이든, 심지어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악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워싱턴은 그 권리를 거부하고 머리 숙여 인사를 한 마지막이자 유일한 대통령이다.)

 

But the Americans are, above all, a problem-solving people. They do not believe that anything in this world is beyond human capacity to soar to and dominate. They will not give up. Full of essential goodwill to each other and to all, confident in their inherent decency and their democratic skills, they will attack against and again the ills in their society, until they are overcome or at least substantially redressed. --P. 976

미국인은 무엇보다 문제해결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 지배할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고유의 품위와 민주적 능력에 확신을 가진 서로와 모두에게 선의로 가득차 있기에 그들은 자신들 사회의 병폐들을 극복되거나 최소한 상당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공격하고 또 공격할 것이다.

 

 

The Penguin history of the USA (펭귄 미국사, 2001)

 

영국 에식스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Hugh Brogan(휴 브로건, 1936~2019)는 본서에서 <영국 식민지 시대, 미국 혁명, 평등의 시대, 황금의 시대, 패권국가>로 나누어 레이건 시대까지 미국 역사의 다양한 역동적인 인물과 사건을 소개한다.

 

It was small, and already unfortunate, since the company of 144 that had embarked in three little ships(Susan constant, Godspeed, Discovery) only 105 had survived the voyage. The place they founded, Jamestown, has long been abandoned. But with Jamestown begins the history proper of the people known as Americans. --P.11

세 척의 작은 배(수전 콘스턴트 호 갓스피드 호 디스커버리 호)에 승선하고 출항한 114 명은 항해에서 105명만 살아 남았기 때문에 작고 이미 불행한 일이었다. 그들이 발견한 장소인 제임스타운은 오랫동안 버려져 왔다. 하지만 제임스타운과 함께 미국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의 고유한 역사가 시작된다.

 

In 1890 the decennial census made it seem that there was no more unoccupied land available for white settlement in the United States; but in that very year the Indian tribes were robbed of a further seventeen million acres one-seventh of the remaining Indian landsunder the Allotment Act of 1887, which Congress had passed solely, its supporters averred, in order to hasten the civilization and happiness of Indians. It resulted in the Indians losing eighty-six million acres together between 1887 and 1934. --_.69

1890년에 10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조사는 미국에서 백인 정착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비어있는 땅이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해에 인디언 부족들은 1887년 할당법에 따라 남아있는 인디언 땅들 중 7분의 1에 해당하는 1,700만 에이커를 추가로 빼앗겼다. 이 법안은 의회가 단독으로 통과시켰으며, 이 법의 지지자들은 인디언들의 문명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 법을 옹호했다. 이로 인해 인디언들은 1887년과 1934년 사이에 8,600만 에이커의 영토를 함께 상실했다.

 

By July the Civil War was entirely over. Roughly 359,000 Union soldiers, 258,000 Confederates. had died either on the battlefield or in military hospitals, which means that it was and is the bloodiest war in American history in terms of absolute members as well as in proportion of casualties to the population. --P. 345

7월이 되자 남북전쟁은 완전히 끝났다. 북군은 대략 359,000명 정도, 남군은 258,000명 병사들이 전장이나 군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절대적인 숫자뿐만 아니라 인구 대비 사상자 비율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음을 의미한다.

 

The ship’s voyage was indeed endless; but 1999, looking back, the American people could reasonably feel that they had survived its most dangerous passage; looking forward, they could expect to find themselves equal to whatever challenges a new century and a new millennium might throw at them. --P. 694

그 배의 항해는 정말 끝이 없었다; 그러나 1999년을 돌이켜보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가장 위험한 항로에서 살아남았다고 합리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면, 미국인들은 새로운 세기와 새로운 천년이 그들에게 닥칠 수 있는 어떤 도전과도 동등한 자신들을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손종옥 2024-02-27 23:12:47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역사로부터 배운 교훈이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나아갈 방향의 설정과 의사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논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동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