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미국사⑤…패권주의 시대
신박한 미국사⑤…패권주의 시대
  • 김위영 고전연구가
  • 승인 2024.03.2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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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의 향기 제국적 팽창, 양차대전·냉전 거치며 우월적 지위…소련 붕괴후 수퍼파워

 

김위영 고전연구가, B2B 산업번역 크리덴셜(https://credloc.com/ko) 대표이사

 

미국은 1900년에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을 흡수했고, 하와이 섬과 웨이크(Wake) 섬에 이어 버진아일랜드를 사들이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 미국 육지 면적의 5분의 1에 달하는 해외 영토를 확보했다. 한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해외에 미군의 주둔 기지를 확보한 제국이다. 미국은 재건기(1861~1877), 길드 시대(1877~1893), 진보시대(1890~1920), 제국주의 시대(1875~1914),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걸치며 어느 나라도 따라잡을 수 없는 군사 및 산업 강국으로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다.

미국은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오기 위해 남북전쟁을, 루스벨트의 4(언론, 신앙, 결핍, 공포)의 자유를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리고 자유 세계를 지키기 위해 냉전을 치렀다. 냉전 시대에 미국은 소련 봉쇄를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 최고 책임자이던 George Kennan(조지 캐넌, 1904~2005)1946년 국무부에 보낸 장문의 전신에서 이 새로운 방침을 정의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1947년 유명한 Foreign Affairs(포린 어페즈)잡지에 ‘X’라는 가명으로 “The Sources of Soviet Conduct(소련 행동의 원천)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여 냉전의 물꼬를 텄다. 그는 이 논문에서 명확히 냉전의 필요성을 적시했다. It is clear that the main element of any United States policy toward the Soviet Union must be that of a long-term, patient but firm and vigilant containment of Russian expansive tendencies.(미국의 대소련 정책의 기본은 소련의 팽창 추세에 대한 장기적이고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확고하고 주의 깊게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1949년 유럽에는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가 체결되었고 미국은 동남아와 남미및 중동에서 끊임없이 소련과 대결을 벌여야 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이다. 1970년대 데당트(긴장 완화)를 주도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베트남 전쟁은 종전되고, 핑퐁(탁구) 외교로 중국을 개방하여 소련에 대응했다. 레이건과 영국 대처 수상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련은 1991년 해체되었다. 아랍의 알카에다에 의해 20019.11테러가 이어나고 부시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Superpower)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세계를 상대로 한 중국의 도전으로 미중경쟁이 치열해지고 2017년 이단아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해 기존의 세계질서를 뒤흔들었다.

냉전 시기는 미국과 소련의 동맹국 사이에 갈등과 긴장 및 경쟁이 이어진 대립시기(1945~1991)를 말한다. 저명한 냉전사가 John Gaddis(존 개디스, 1941~) 예일대 교수는 The Cold War(냉전, 2007)을 통하여, 유럽 냉전은 장기 평화(long peace)’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 Paul Chamberlin(폴 체임벌린, 1962~)교수는 The Cold War’s killing fields(냉전의 학살장, 2018)에서 냉전 시기에 유렵 외 지역인 중국, 한국, 인도차이나, 베트남,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아프카니스탄, 이란, 이라크, 레바논은 전쟁으로 2,000만명이 죽었다고 주장한다. Between the end of World Warand 1990, more than 20 million people died in violent conflicts. Broken down, that means than an average of more than 1,200 people died in wars of one type or another, every day, for forty-five years. Most of them were civilians. --P.19 (2차 세계대전의 종결부터 1990년 사이에 2000만 명 이상이 폭력적 충돌 과정에서 사망했다. 나눠 보면, 이는 이런저런 유형의 전쟁에서 45년 동안 매일 평균 1200여 명이 죽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냉전의 킬링필드 중에서>)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문명의 충돌, 1996>를 저술한 하버드대학교 정치학자였던 Samuel Huntington(새뮤얼 헌팅턴, 1927~ 2008) 교수는 Who Are We?(우리는 누구인가?, 2004)를 통해, Americans identity, Stanley Hoffmann has similarly argued, is the unique product of a “material feature”, its ethnic diversity produced by immigration, and an “ideological feature,” its liberal democratic Creed. --P. 37 (스탠리 호프먼의 비슷한 주장 속에서, 미국의 정체성은 물질적 특성과 이민에 의해 생산된는 민족의 다양성, 그리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신조인 이념적 특성의 독특한 산물이다. --<미국의 정체성>중에서.)라고 <미국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2045년이면 히스패닉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미국 인구의 과반수를 넘게 되지만 헌팅턴은 <미국의 여러 세대가 헌신한 앵글로-개신교 문화와 다민족, 다인종 사회를 이룩한 초기 개척자들의 신조(Creed)를 유지한다면 미국은 지금처럼 존속할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미국은 여러 민족인 협력하는 “melting pot(용광로)”라고 비유적으로 말하지만 여러 민족이 미국의 정체성에 동화(同化, assimilation)되기는 어려운 난제이다. 하지만 미국이 추구해온 진보적 자유주의와 평등 그리고 인권과 기독교적 가치의 정체성을 확립하다면 앞으로도 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 아직도 미국은 21세기 The age of migration(이주의 시대)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백만 명이 이민 오기를 희망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미국 팽창주의를 그린 1898년 필라델피아 프레스의 만평 /위키피디아
미국 팽창주의를 그린 1898년 필라델피아 프레스의 만평 /위키피디아

 

지난 5회에 걸쳐 미국사의 총론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미국 역사의 각론인 <식민지 시대, 독립 전쟁, 남북전쟁, 노예제도, 냉전 시대, 세계대전, 현대사>를 주제로 연재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미국 역사는 짧지만 세계 역사의 축소판으로 < 다양한 인종 갈등, 흑백문제, 이념 분쟁, 보갈등, 빈부격차, 총기소지 등> 너무나 역동적이며 거칠고 험난한 폭풍우와 같은 Turbulent history(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항상 재미있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나라이다. 또한 역사는 객관적인 서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균형이 잡힌 시각을 가지고 합리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해석을 가지고 보다 정의롭고 역동적이며 더 나은 미래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는 암흑시대이기 때문이다. 항상 변화하는 미국 역사는 흥미롭다. 역사는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과거를 바라보며, 과거의 사실은 오늘과 내일을 만들기 위한 자양분일 뿐만아니라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것이다.

 

 

American history:A very short introduction(2012)

( 미국의 아주 짧은 역사 개론, 옥스퍼드 발간 VSI시리즈 )

 

미국의 위스콘신대학교 역사학 교수 Paul S. Boyer(폴 보이어, 1935~ 2012)는 미국 역사의 시작을 1776년 독립 전쟁으로 볼지, 아니면 1619년 아프리카인 노예가 처음 도착한 때를 기준으로 할지 이견이 있다고 한다. 저자는 선사 시대부터 21세기까지 방대한 역사를 시대순에 맞춰 9개의 주제로 요약했다.

 

This era also saw the introduction of slavery, planting the seeds of civil war and a noxious harvest of racism. Prevalent in ancient civilization, Slavery had long flourished in Africa and the Arab world. Now, like a spreading virus, it crossed the Atlantic. The first slave ship arrived in Jamestown in 1619, and many more followed. --P.8

식민지 시대는 노예제도가 도입되었고 남북전쟁과 인종주의의 해로운 결과라는 씨앗을 심었다. 고대시대에 성행한 노예제도는 아프리카와 아랍 세계에서 오랫동안 번성했다. 지금은 널리 퍼지는 숙주처럼 대서양을 넘었다. 첫 노예 선박은 1619년 제임스타운에 도착했고 뒤어어 더 많이 도착했다.

 

Saddled with debt from the Seven Years’ War, Parliament set out to extract more revenue from the colonies. From London’s perspective this seemed fair, since British troops had defeated the colonists’ French foes. These postwar taxes and other measures angered many colonists, however, since the colonies lacked representation in Parliament. --P. 15

7년 전쟁으로 부채를 짊어진 영국 의회는 식민지들에서 더 많은 세금을 뽑아내는 일에 착수했다. 영국이 보기에 이것은 공정하게 보였다. 영국군이 식민지인들의 프랑스 적군을 몰아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후 세금과 기타 조치는 수많은 이주민을 화나게 했다. 식민지는 영국 의회에 그들의 대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In a remarkable thirteen years, thirteen British colonists had won independence and established a new nation. The 1787 Constitution, though a document of its time, and stained by reference to slavery, stands as a remarkable achievement, creating the first modern republican government.--P.29

놀라운 13년에 13개 영국 식민지는 독립을 쟁취하고 새로운 국가를 수립했다. 1787년 만들어진 헌법은 비록 당시의 문서이고 노예제도에 대한 언급으로 얼룩졌지만 최초의 근대 공화주의 정부를 창조한 주목할만한 업적으로 자리 잡았다.

 

Lincoln went to war to save the Union, not to end slavery. While personally opposed to slavery, he presided over a divided cabinet and nation, including three slave states that remained in the Union: Maryland, Kentucky, and Missouri. --P.97

링컨은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방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노예제도에 반대했지만, 연방에 남아 있는 세 개의 노예주 메릴랜드주, 켄터키주, 미주리주를 포함해 분열된 내각과 국민을 통솔했다.

 

By around 2040, demographers forecast, non-Hispanic whites, long an absolute majority, will comprise fewer than half the total U.S. population. --P.124

인구통계학자들은 2040년경이면, 오랫동안 절대 다수인 히스패닉계가 아닌 백인들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Nations and empires rise and fall. Yet the United States over the centuries has shown a capacity for political renewal and creative responses to challenges, with its leadership in the computer and electronic-communications revolutions a recent example. --P. 137

국가와 제국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하지만 수 세기에 걸쳐 미국은 정치적 쇄신과 도전에 대한 창조적 응전 능력을 보여왔으며, 컴퓨터와 전자통신 혁명 분야에서의 리더십이 최근의 사례이다.

 

 

A littl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2016)

 

미국의 역사 전문 작가인 James W. Davidson(제임스 데이비슨, 1946~)은 예일대학교에서 간행하는 A little history(소사) 시리즈의 한 권으로 본서를 출판했다. 저자는 총 40개 항목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미국사 전체를 소개하고 있다.

 

The motto of the United States is the Latin phrase Epluribus unum: out of man, one. The Founders who declared the nation’s independence insited that its citizensin fact, all humankindhad been created equal and possessed the right to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P. xiii

미국의 모토는 라틴어로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이다. 독립을 선언한 건국자들은 국민들, 사실상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Not that all people were equally talented, equally educated, or equally rich. Not even that they should be equal in those ways. “Every man shall be free to become as unequal as he can.” The people wanted not equality, but equality of opportunity. --P.119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재능이 있거나, 동등하게 교육을 받았거나, 동등하게 부유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그들이 동등해야 한다는 것조차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가능하다면 불평등하게 될 자유가 있다." 사람들은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원했다. -

 

Roosevelt insisted that the federal government should preserve some of these priceless lands for future generations. It needed to managed the nation’s natural resources. The president added some 200 million acres of land to forest reserves and carved out more national parks. --P. 220

루스벨트는 연방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하여 일부의 귀중한 영토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정부는 국가의 천연자원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은 산림 보호구역에 약 2억 에이커의 땅을 추가했고 더 많은 국립 공원을 조성했다

 

The world we inhabit surely includes perils the founding generation could not have foreseen. And the American political system, as it has evolved, seem so divided, so disconnected from an intimately connected world that the term gridlock is frequently applied. --P. 309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건국 세대가 예측하지 못했던 위험들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체제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너무나 분열되어 있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계와는 너무나도 단절되어 있어서, 교착상태라는 용어가 자주 적용된다.

 

 

These Truths: 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2019)

 

하버드대학교 역사학 교수 Jill Lepore(질 레포레, 1966~ )여사는 The Name of War: King Philip's War and the Origins of American Identity(전쟁의 이름:필립 왕의 전쟁과 미국 정체성의 기원, 1999)으로 매년 훌륭한 역사저술에 수여하는 저명한 Bancroft(밴크로프트)상을 1999년 수상했다. 본서는 <이념, 사람, 국가, 기계>를 주제로 미국사를 설명하고 있는 독특한 저서이다.

 

The past is an inheritance, a gift and a burden. It can’t be shirked. You carry it everywhere. There’s nothing for it but to get to know it. --P. xx

과거는 유산이고, 선물이고, 부담이다. 과거는 회피될 수 없다. 당신은 그것을 어디든 가지고 다닌다. 그것을 알게 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There were not one but two American Revolution at the end of the eighteenth century: the struggle for independence from Britain, and the struggle to end slavery. Only one was won. --P.76

18세기 말에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의 미국혁명이 있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단 한 번만 승리했다.

The Constitution drafted in Philadelphia acted as a check on the revolution, a halt to its radicalism; if the Revolution had tilted the balance between government and liberty toward liberty, the Constitution shifted it toward government. But in very many ways the Constitution also realized the promised of the Revolution, and particular the promise of the representation. --P. 121

필라델피아에서 기안된 헌법은 혁명을 견제하고 급진주의를 중단하는 역할을 했다. 만약 혁명이 정부와 자유 사이의 균형을 자유로 기울였다면, 헌법은 균형을 정부 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헌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명의 약속과 특히 대의(代議)의 약속도 실현했다.

A great debate had ended. A terrible war had been won. Slavery was over. But the unfinished work of a great nation remained undone: the struggle for equality had only just begun. --P. 306

위대한 논쟁이 끝났다. 끔찍한 전쟁은 승리했다. 노예제는 끝났다. 하지만 위대한 국가의 미완성 과제는 실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평등을 위한 투쟁은 단지 시작했을 뿐이다.

 

By 1974, when Richard Nixon announced his resignation from the presidency, sitting before blue drapes in the Oval Office, fifteen years after his debate with Nikita Khrushchev in the canary-yellow kitchen in Moscow, liberalism had begun its long decline, and conservatism its long ascent. And the country was on the way to becoming nearly as divided, and as unequal, as it had been before the Civil War. --P. 594

1974년 경에 리차드 닉슨이 모스크바의 카나리아색 부엌에서 니키타 흐루쇼프와 논쟁을 벌인 지 15년 만에 대통령 집무실에서 파란 휘장 앞에 앉아 대통령직 사임을 발표할 때, 자유주의는 오랜 쇠퇴를 시작했고, 보수주의는 장기의 상승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나라는 남북전쟁 이전과 마찬가지로 거의 분단되고, 불평등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How to hide an Empire (제국을 숨기는 방법, 2019)

A history of the greater United States( 미국 제국의 연대기)

 

미국 노스웨스턴대 역사학과 교수 Daniel Immerwahr(대니얼 임머바르, 1980~)는 본서를 통해 미국이 본토 이외에 해외에서 영토확장의 역사를 고찰한다.

 

At the turn of the twentieth century, when many were acquired(Puerto Rico, the Philippines, Guam, American samoa, Hawaii, Wake), their status was clear. They were, as Theodore Roosevelt ans Woodrow Wilson unabashedly called them, colonies. --P.7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은 섬이 미국의 영토로 편입되었고(푸에르토리코, 필리핀, , 미국령 사모아, 하와이, 웨이크섬), 그곳들의 지위는 분명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이 뻔뻔스럽게 말한 것처럼 그곳들은 식민지였다.

 

From the day the treaty securing independence from Britain was ratified, right up to the present, it’s been a collection of states and territories. It’s been a partitioned country, divided into two sections, with different laws applying in each. --P. 10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한 조약이 비준된 그 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주와 영토의 집합체인 국가다. 각각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두 영역으로 나뉜 분할 국가인 것이다.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s contained a union of American states, as its name suggests. But it has also contained another part: not a union, not states, and (for most of its history) not wholly in the Americas. --P.10

미합중국은 그 이름이 시사하는 것처럼 미국 주들의 연합체를 포함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곳들도 포함해 왔다. 이는 연합체도 아니고 주도 아니며 역사를 통틀어 온전히 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적이 없었던 곳들이다.

 

What getting the Greater United States in view reveals is that race has been even more central to U.S. history than is usually supposed. It hasn’t just been about black and white, but about Filipino, Hwaiian, Samoan, and Chmoru(from Guam), too, among other identities. Race has not only shaped lives, it’s shaped the country itselfwhere the borders went, who has counted as “American.” --P.12

넓어진 미국을 고찰하여 밝혀진 것은 인종이 미국 역사에서 언제나 생각한 것보다 더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흑인과 백인뿐만 아니라 다른 정체성 중에서, 필리핀인, 하와이인, 사모아인 및 차모로인(괌 출신) 등도 마찬가지였다. 인종은 삶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구성 요소이기도 했다. 국경이 어디까지인지 누가 미국인으로 간주될지 여부이다.

 

The dispossession of Native Americans and relegation of man to reservations was pretty transparently imperialist. Then, in the 1840s, the United States fought a war with Mexico and seized a third of it. Fifty years later, it fought a war with Spain and claimed the bulk of Spain’s overseas territories. --P.14

북미 원주민을 추방하고 대부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주 명백한 제국주의자이다. 그리고 1840년대에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을 통해 3분의 1의 영토를 확보했다. 50년 후 다시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스페인의 해외 영토 대부분을 차지했다.

 

The years since the Second World War have brought the U.S. military to country after country. The big wars are well-known: Korea,Vietnam,Iraq, Afghanistan. But there has also been a constant stream of smaller engagement. Since 1945, U.S. armed forces have been deployed abroad for conflicts or potential conflicts 211 times in 67 countries. --P.14

2차 세계대전 이후 몇 년간 미군은 각국으로 계속 파병됐다. 큰 전쟁으로 잘 알려진,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칸 전쟁이다. 그러나 소규모의 군사적 개입은 끊임없는 흐름이었다. 1945년 이후 67개국에서 211차례에 걸쳐 분쟁 또는 분쟁 가능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미군 병력이 해외에 배치되었다.

 

The culture changed, too. Rather than being despised “banditti” or “white savages” on the fringes of civilization, settlers acquired a new identity: pioneers. No longer scofflaws, they were the proud flag-bearers of a dynamic nation. --P.35

문화도 바뀌었다. ‘노상강도또는 문명의 변방에 있는 백인 야만인이라는 멸시보다는 정착민들은 개척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더 이상 상습적 범법자가 아니라 역동적인 국가의 자랑스러운 기수(旗手)가 되었다.

 

The Philippines was the largest U.S. colony. A similar story played out in the second-largest, Puerto Rico. The Depression had wreaked havoc on the island: unemployment, strikes, and egged on by Pedro Alizu Gamposviolence. --P.161

필리핀은 미국의 최대 식민지였다. 두 번째로 큰 식민지인 푸에르토리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개됐다. 대공황으로 인해 푸에르토리코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실업과 파업이 넘쳐났고, 페드로 알비수 캄포스의 선동으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The united States wasn’t just an economic superpower, it was a military one, too. Its vast armed forces had been agents of standardizament during the Second World War, and they continued to be so afterward, during the Cold War. Washington flooded the world with its arms and equipment. In accepting them, foreign militaries had to adopt U.S. standard as well. --P. 311

미국은 경제적 초강대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초강대국이었다. 엄청난 병력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표준화의 동인이었고 이후 냉전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미국 정부는 전 세계에 무기와 장비를 넘쳐나게 공급했다. 이를 도입하면서 외국의 군대는 미국 표준도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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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옥 2024-03-26 17:29:48
미국이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노예제도와 인종차별등 암울한 현실이 존재함에도 세계역사의 축소판이자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있는 것이 현실이다.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내며 융합체를 형성한 것은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다만,국가나 개인 모두 흥망성쇠는 영원함이 없이 반복됨을 명심해야겠다.